
제1화
대지와 하늘
시점 · 가이아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조차 없었다. 어둠이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때는 빛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으니까. 훗날 이야기꾼들은 그것을 카오스라고 불렀다. 텅 빈 틈. 입을 벌린 채 아무것도 삼키지 않는 거대한 공허.
그 공허 속에서, 무언가가 처음으로 무게를 가졌다.
가이아는 자신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바닥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아래가 생겼고, 그래서 위가 생겼다. 그녀는 넓어졌고, 단단해졌고, 마침내 그녀 위에 서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녀는 대지였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받쳐줄 수 있는 존재.
그러나 받쳐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이아는 오랫동안 혼자였다. 그녀의 표면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 위로는 여전히 공허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볼 때마다 그녀는 추위 비슷한 것을 느꼈다. 덮어줄 것이 없는 몸의 추위였다.
그래서 그녀는 하늘을 낳았다.
자신과 꼭 같은 크기로. 자신의 모든 곳을 빈틈없이 덮을 수 있도록. 그녀는 그를 우라노스라 불렀다. 별이 박힌 넓은 하늘. 그가 처음 그녀 위로 펼쳐졌을 때, 가이아는 태어나 처음으로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산을 낳아 하늘과 대지 사이를 잇게 했고, 바다를 낳아 자신의 움푹한 곳을 채우게 했다. 세상이 모양을 갖춰갔다. 그리고 하늘은 매일 밤 대지 위로 내려앉았다. 아들이었고, 남편이 되었다. 그때는 그것을 나눌 말이 아직 없었다.
첫 아이들은 아름다웠다.
열둘이었다. 아들 여섯과 딸 여섯. 훗날 티탄이라 불리게 될 아이들이었다.
맏이는 오케아노스였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대지의 가장 바깥쪽으로 흘러갔다. 세상의 테두리를 따라 끝없이 도는 거대한 강. 그것이 그의 몸이었다. 오케아노스는 형제들 중 가장 말이 없었다. 가이아가 부르면 그는 언제나 대답했지만, 세상의 한가운데로 다가오는 법은 없었다. 그는 늘 끝에 있었다.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지만 아무것에도 휘말리지 않는 곳에.
가이아는 그 아이를 가장 믿었고, 동시에 가장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로 동생들이 태어났다. 빛을 품고 태어난 히페리온, 하늘의 축을 쥔 코이오스, 별자리를 셈하는 크리오스, 그리고 형제들 중 가장 고집이 셌던 이아페토스. 딸들도 저마다 달랐다. 질서를 아는 테미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므네모시네, 빛나는 테이아와 포이베, 오케아노스를 따라 세상의 끝으로 흘러간 테티스. 그리고 대지처럼 넉넉한 품을 가진 레아.
막내가 크로노스였다.
크로노스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형들이 빛을 다투고 누이들이 노래할 때, 그는 구석에 앉아 지켜보았다. 누가 누구의 말을 따르는지. 아버지가 언제 기분이 좋고 언제 나쁜지. 그는 아버지를 가장 무서워했고, 그래서 아버지를 가장 오래 관찰했다.
가이아는 막내의 그런 눈빛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문제는 그다음 아이들이었다.
셋이 먼저 태어났다. 거대한 몸에 눈이 이마 한가운데 하나뿐인 아이들. 가이아는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천둥을 뜻하는 브론테스, 번개를 뜻하는 스테로페스, 섬광을 뜻하는 아르게스. 훗날 키클롭스라 불리게 될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무언가를 두드리고 녹이고 빚기 시작했다. 손에 쥐는 모든 것이 그들의 손에서 다른 것이 되었다.
그다음 셋은 더 컸다. 어깨에서 쉰 개의 머리가 솟았고, 팔이 백 개나 뻗어 나왔다. 코토스, 브리아레오스, 기게스. 백 개의 손을 가진 자들, 헤카톤케이레스. 그들이 처음 울음을 터뜨렸을 때 산이 흔들렸다.
가이아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 크고 이상하고 무서운 그대로.
우라노스는 아니었다.
그는 키클롭스의 외눈을 보고 얼굴을 돌렸다. 헤카톤케이레스의 백 개의 팔이 허공을 휘저을 때 그는 뒷걸음질 쳤다. 가이아는 그것이 혐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두려움이라는 걸 알았다. 하늘은 처음으로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것을 본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두어라."
우라노스가 말했다. 가이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직접 그렇게 했다.
여섯 아이는 대지의 가장 깊은 곳으로 밀려 들어갔다. 빛이 닿지 않는 곳. 가이아의 몸속, 그녀 자신도 손이 닿지 않는 가장 깊은 틈으로.
그곳은 가이아의 몸이었다.
그 순간부터 가이아는 매일 그들을 느꼈다. 자기 안쪽 깊은 곳에서 아이들이 몸부림치는 것을. 키클롭스가 어둠 속에서 벽을 두드리는 진동을. 헤카톤케이레스의 백 개의 팔이 출구를 찾아 그녀의 속을 긁어대는 것을. 그것은 고통이었다. 출산보다 긴, 끝나지 않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하늘은 매일 밤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 위로 내려앉았다.
가이아는 오래 참았다. 대지는 원래 오래 참는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땅속 깊은 곳에서 브리아레오스가 울었다. 쉰 개의 목으로 동시에. 그 울음이 그녀의 뼈를 타고 올라와 산맥을 갈랐다. 그날 가이아는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 가장 단단한 곳에서 회색 금속을 끌어냈다. 아다마스. 부서지지 않는 것. 훗날 사람들이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강철을 그 이름으로 부르게 될 금속이었다. 가이아는 그것을 오래 벼렸다. 휘어진 날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낫이었다.
그녀는 열두 자식을 불러 모았다.

티탄들은 어머니가 내민 낫을 보고 침묵했다.
가이아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땅속에 갇힌 형제들에 대해. 그들이 내는 소리에 대해. 아버지가 무엇을 했고, 앞으로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누가 엄마를 돕겠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히페리온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아페토스는 이를 악문 채 주먹만 쥐었다 폈다. 테미스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 그 무게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알고 있었다. 하늘에 낫을 겨눈다는 건 세상 전체에 칼을 겨누는 일이었다.
가이아의 시선이 맏이에게 향했다.
오케아노스는 형제들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 물이 흘러내려 발밑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니."
차분한 목소리였다. 사과도, 변명도 없었다.
"아버지가 옳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겁니다. 하늘을 벤 자는 언젠가 베일 것이고, 그 자를 벤 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저는 그 고리 바깥에 있고 싶습니다."
가이아는 맏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화가 나야 했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말 어딘가에, 그녀가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케아노스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세상의 끝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그는 형제들의 일에 다시는 끼어들지 않았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의 딸 하나가 그 고리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때까지는.
그리고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을 때.
"제가 하겠습니다."
크로노스였다.
막내는 형제들 사이를 지나 어머니 앞에 섰다. 그의 눈은 낫을 보고 있었다. 두려움이 없는 눈이었다. 아니, 두려움이 너무 오래 쌓여서 다른 무언가로 굳어버린 눈이었다.
가이아는 낫을 건넸다. 크로노스의 손가락이 손잡이를 감쌌다. 그 손은 떨리지 않았다.
"형들은 문 앞을 지켜주세요." 크로노스가 형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처음으로 그가 형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형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은 다른 밤과 다르지 않았다.
우라노스는 언제나처럼 별을 거느리고 내려왔다. 그는 대지를 덮었다. 넓게, 빈틈없이, 그녀의 모든 곳을. 가이아는 눈을 감았다. 그 온기가 한때 그녀가 원했던 전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어둠 속에서 크로노스가 움직였다.
그는 어머니의 품, 하늘과 대지가 맞닿는 가장 은밀한 틈에 숨어 있었다. 아버지가 가장 무방비해지는 곳. 오랜 세월 아버지를 관찰한 막내만이 알고 있는 곳이었다.
낫이 달빛을 받아 한 번 번쩍였다.
하늘이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울렸다. 별들이 흔들렸고, 산이 떨었고, 바다가 거꾸로 솟구쳤다. 우라노스는 몸을 뒤틀며 위로, 위로 물러났다. 대지에서 떨어져 나가며. 그가 그토록 빈틈없이 덮고 있던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멀어지며.
그날 이후 하늘은 다시는 대지 위로 내려오지 않았다. 둘 사이에 생긴 그 아득한 거리를, 훗날의 존재들은 그냥 '세상'이라고 부르게 된다.
하늘의 피가 대지 위로 떨어졌다.
뜨겁고 무거운 방울들이었다. 가이아는 그것을 받아냈다. 대지는 무엇이든 받아내는 존재였으니까. 피는 그녀의 흙 속으로 스며들었고, 아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그것을 느꼈지만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주 오랜 뒤에야, 그 피에서 자라난 것들이 땅을 찢고 올라오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낫에 베인 하늘의 일부는 바다로 떨어졌다. 파도가 그것을 삼켰고, 그 자리에서 하얀 거품이 오래도록 일었다. 아무도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멀리,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 우라노스의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갈라지고 피에 젖은 목소리였다. 그는 자식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티탄. 손을 뻗어 감히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자들.
"기억하거라, 크로노스. 네가 한 일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온다. 너 역시 네 자식의 손에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크로노스는 낫을 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젊었고, 이겼고, 아직 두려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형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누이들이 노래했다. 레아는 박수를 치며 막내 동생에게 달려갔다.
가이아만이 웃지 않았다.
그녀는 크로노스가 들고 있는 낫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건넨 것. 그리고 맏이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겁니다.
축하가 끝나갈 무렵, 가이아는 막내를 불렀다.
"땅속의 형제들을 꺼내주렴.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를. 그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잖니."
크로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했고, 다정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그는 말했다.
"물론입니다, 어머니. 곧."
그러고는 왕좌가 있는 높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가 떠나 텅 빈 그 자리를.
땅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 제1화 끝 —